이 작고 작은 위키드에 너무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주의 기운인지, 여름탓인지, 회색성수에 파란색을 심어둔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명 지르지 않고 우리 온라인팀, 오프라인팀에 주어진 과제들을 성실히 수행해나가며 사부작대는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모두가 위키드를 아껴주고 지켜봐주시는 마음이 이 작은 브랜드를 지탱하게 해줍니다 🎁 서문부터 벌써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오늘도 맛있을 준비 되셨나요?

75회에 이르는 레터를 쓰면서 까베르네소비뇽은 한번도 소개 안 하고 까베르네프랑을 기술하는 대담함이라니! 😎 라고 생각하셨다면 약 1년 반 넘게 발송되는 뉴스레터 찐팬이실 것 같아요. 전세계 모든 와인책의 첫번째 페이지에 기재되는 ⭐적포도스타⭐ 까베르네소비뇽을 잠시 짚고 넘어가면, 캡(까베르네소비뇽)은 단단한 구조감, 묵직한 타닌, 블랙베리와 무르익은 체리를 보여주는 '적포도의 왕'쯤 되는 포도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은 남우주연이 아니라 남우조연 까베르네프랑입니다. 주인공보다 조연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글쓰는 사람 마음이예요? 😉

까베르네프랑은 까베르네소비뇽과 앞글자 네자리만 똑같고 나머지는 전혀 다른 성질의 포도입니다. 보르도에서는 위엄있고 보수적인 까베르네소비뇽을 부드럽고 풍만한 과실미로 서포트하는 2인자 포도이지만, 서늘한 프랑스 루아르 지역에서는 단독주인공이예요. 연필심에서 나는 시원하고 날카로운 향, 후추의 알싸한 향, 실수로 밟은 산딸기의 끈적하고 달콤한 과실향 하모니가 멋진 수트핏을 완성한다고나 할까요... 매력 그 자체.

루아르에 위치한 소뮈르-샹퓌니 마을은 코코샤넬의 고향입니다. 이 지역에서 까베르네프랑으로 만든 레드와인 은 한결같이 서늘하고 뜨거웠어요. 냉정함 속에 뜨거운 마력을 품어내는 매력적인 와인을 이 지역에서 많이 많이 만났습니다. 이를테면 도멘 필라토르의 와인같은 것들. 나라, 지역, 품종에 기반한 포도의 여정에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마셔보지 않고는 단정지을 수 없는 단편소설들이 항상 기다립니다. 와인을 좋아한다면 머릿속에 나라, 지역, 품종의 프레임을 만들고 하나하나 채워넣어보세요. 그 아카이브가 '쓸모의 기록'처럼 오늘 하루를 풍성하게 채워줄 거예요.

까베르네프랑은 직관적인 까베르네소비뇽보다 훨씬 더 '숨기고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포도입니다. 산도도 오묘하고 과실미도 오묘하고 '서늘하다'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쓰게 되는 신비로운 포도예요. 그러니 너무 직관적이고 기름진 요리에는 잘 맞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페어링 푸드를 추천할게요.

짖궃은 프랑스 친구들은 '까쇼'라고 말할 때 못 알아듣는 척 앙팡테리블한 표정을 짓습니다 🤡  모든 말을 줄여서 사용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미 20년전부터 까베르네소비뇽을 까쇼라고 부르는 담대한 민족이었는데요, 우리나라 술이 아닌 서양에서 온 술을 마실 때는 그 나라의 단어를 존중해주고 발음해주는 것도 멋진 화술, 멋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꾹꾹 눌러 '까베르네소비뇽'을 다 발음합니다. '캡'도 영어라서 싫다고 '울랄라'하는 프랑스 친구들을 존중하기 때문이지요 😉 정답은 없지만 결국 모든 단어와 대화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