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와이프는 2019년 9월 16일 오픈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사실 그보다 앞선 2018년 5월에 바로 뒷골목에서 스무병 남짓의 와인을 셀렉해서 팔던 작은 일상와인편집샵이었습니다. 2017년에는 금호동에 위치한 창업자의 아파트에서 '소셜와인클럽'을 운영했었죠.
여러해를 거치며 위키드에도 이런저런 와인이 많이 다녀갔습니다. 새롭게 수입된 와인, 맛있게 마셔서 기억이 좋았던 와인, 수입사대표님의 철학이 좋아서 믿고 사보는 와인, 라벨이 예쁜 와인. 모든 요소가 와인 고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중에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와인셀렉기준이 있습니다. 나라와 지역, 품종을 정확히 반영해 그것의 정체성을 맛있게 드러내는 와인입니다.
새롭게 수입된 와인은 저와 스태프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켰고, 맛있게 마셔서 좋았던 와인은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어 좋았고, 수입사대표님의 철학이 좋아서 입고한 와인은 거래처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고, 라벨이 예쁜 와인은 인스타에 올리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라와 지역, 품종을 정확히 반영했는데 너무너무 맛있어서 심지있게 입고한 와인은 방문하는 손님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장르의 와인을 다 갖추고있어야겠지만, 이 카테고리야말로 위키드가 영원히 가져가야할 정체성이라는 것을 느꼈던 올 상반기였습는데요, 그 생각에 다시한번 확신을 가진 건 며칠전 뒷머리를 망치로 두드려맞은 것 같은 와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라벨에서 풀이 연상되는 아름다운 녹색밀랍으로 밀봉된 내추럴와인을 시음했습니다. 지역은 보르도 근처 소테른에 가까운 마을. 남편과 아내가 운영하는 와이너리. '꾸'로 시작하는 네글자짜리 화이트와인으로 이미 너무나 유명한 곳. 그러다 올해 처음으로 남편이 아내 상드린에게 '당신도 한번 전부 다 혼자 만들어보는 건 어때?'랬대요(부러워라☺️) 아내 상드린은 신이 나서 보르도의 고전적인 블렌딩방식으로 세미용과 소비뇽블랑을 블렌딩해 순식간에 멋진 유기농 화이트를 만들었습니다. 그 와인이 2023년, 폭염이 출몰한 서울의 작은 성수마을에 도착해 위키드와이프라는 작은 와인공간의 8월을 뒤흔들어놓게 되고요. 보르도의 고전적인 블렌딩이 이렇게 맛있게 표현되어 머릿속에 풀과 허브의 그림을 일러스트로 가득 채울 수 있다니, 잠들기 전에 혀끝에서 생각이 나는 맛이라니, 너무나 명확한 세미용과 소비뇽블랑 블렌딩인데 이 조합으로 이런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니. 온갖 기분이 훨훨 날아다니는 선선한 하루였습니다.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와인이 좋아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와인을 시기에 따라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언제든 기필코 찾아낼 수 있고,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인 것 같아요. 오늘 저녁, 1번 테이블에 앉은 두분의 손님이 이 와인을 드시고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정말 맛있네요"라고 말씀하셨죠. 누군가의 표정에서 물음표없이 맛있는 정답을 읽는 건, 한없는 기쁨이고 이 일을 하는 보람입니다. 작년 한해, 위키드의 와인리스트는 타인의 와인리스트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시간도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2023년 1월부터 위키드식 언어로 해석한 와인으로 와인이 제대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8월의 와인리스트는 황홀할 정도입니다. 오늘부터 8월와인들이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업데이트됩니다. 그럼, 다음주에 만나요!